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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에 쓰다

오규원_프란츠 카프카


  : 오규원 시인의 시집『가끔은 주목받는 生이고 싶다』에 실려있는「프란츠 카프카」입니다. 메뉴판을 패러디한 파격적인 작품이지만, 시적 정황은 명확합니다. 시인은 한 까페에서 메뉴판을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메뉴란 것들이 까페 치고는 이상합니다. 메뉴판에는 커피 종류 대신 저명한 문학가와 철학가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시집『악의 꽃』으로 유명한 프랑스 시인 '샤를르 보들레르'가 800원이고, 독일의 철학가 '위르겐 하버마스'는 1200원입니다.『가끔은 주목받는 生이고 싶다』가 출간된 1987년의 물가를 염두에 두더라도, 그들의 이름값에 비하면 턱없는 가격입니다. 물론 사람에게 값을 매기는 것 자체가 불편하기도 합니다.

  시인은 왜 메뉴판에 커피 이름 대신 내로라하는 문학가와 철학가의 이름을 적었을까요? '메뉴판'이라는 형식에 그 실마리가 있습니다. '메뉴판'은 식당이나 음식점 따위에서 파는 음식의 종류와 가격을 적어놓은 판입니다. 상품의 교환가치를 화폐가격으로 명시한 일종의 소비 안내서입니다. 시인은 상품명의 자리에 인명(人名)을 놓음으로써 그 사람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메뉴판을 패러디한 의도는 분명해 보입니다. 문확과 철학 같은 정신적인 가치마저 상품화하는 자본주의의 현실을 풍자하는 것이지요. 물질적인 가치만 중시하는 속물적인 세상에 가하는 따끔한 일침입니다.

  가치 평가를 할 수 없는 인간의 정신세계조차 가격이 매겨지는 세상이지만 지금까지도 여전히 시는 쓰이고 있습니다. 물질만능의 시대에 '돈이 안 되는' 시를 공부하겠다는 제자를 시인은 '미친 제자'라고 부릅니다. 이 표현에는 그런 제자에게 시를 가르치는 시인 자신도 미친 스승일 수밖에 없다는 자조가 숨어 있습니다. 이 미친 제자와 미친 스승이 만나 마시는 커피는 '제일 값싼' '프란츠 카프카'입니다. 시인은 인간존재의 한계와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한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인 프란츠 카프카에게 '제일 값싼'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습니다. 싸구려 커피가 된 프란츠 카프카를 마시는 시인과 시인을 꿈꾸는 제자의 모습이 참 씁쓸합니다.

  올해는 언어와 이미지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시에 대한 끊임없는 사유와 실험정신을 보여준 오규원 시인이 귀천하고 10주기가 되는 해입니다. 10주기를 맞아 다양한 추모 행사가 열렸는데, 거기에는 시인이 20년가량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재직하면서 길러낸 많은 '미친 제자'들이 함께했습니다. "예술은 중도나 타협, 모범에 있지 않고 극단에 있다. 예술가는 대중도 환호도 독자도 없는 곳을 가야 한다." 오규원 시인이 생전 인터뷰에서 남긴 말입니다. 물신(物神)이 지배하며 문학과 철학 등 인문학적 가치가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은「프란츠 카프카」가 시집에 실린 3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규원 시인의 정신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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