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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에 쓰다

엘리엇 부 _ 자살을 할까, 커피나 한 잔 할까?



 ; 엘리엇 부의 『자살을 할까, 커피나 한 잔 할까?』는 독특한 책입니다. 베개로 쓰기에도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500쪽 남짓한 두께, 나란히 붙어 있는 낡은 장정의 책들로 디자인한 표지. 어렵고 재미없는 얘기가 빼곡히 적혀 있을 것 같은 첫인상이지만, 겉모습이 주는 위압감을 떨치고 책을 펼쳐 보면 의외로 부실한(?) 내용이 눈길을 잡습니다. 이 반전 매력 앞에 혹자는 무슨 책이 이러냐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의 왼쪽 페이지에는 대부분 큼지막한 인물 사진이, 오른쪽에는 대여섯 줄의 글이 적혀 있습니다. 그 글이란 게 이런 식입니다. “삶의 속도에만 정신을 팔다가 삶의 알맹이를 놓치는 어리석음. ―간디 // 이 양반이 와이파이를 몰라서 그렇지! ―엘리엇 부” 왼쪽 페이지에 있는 건 당연히 간디의 사진입니다. 『자살을 할까, 커피나 한 잔 할까?』는 이렇게 저자가 고전을 읽으며 밑줄을 그은 구절에 스스로 댓글을 달듯이 적은 짤막한 글귀를 엮은 책입니다. 각 장의 첫머리에는 제법 긴 글들이 있지만, 그마저도 여러 인용구를 이어 붙인 일종의 콜라주입니다. 이 책은 무려 272명의 사람들에게서 인용한 700여 개의 문구로 이루어졌습니다.

  엘리엇 부는 왜 이런 책을 냈을까요? 세계적인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잘 나가는 건축사무소의 대표로 활동하던 그는 어느 날 중요한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다는 기분에 사로잡힙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바쁘기만 한 나날…, 그는 자기 삶의 우선순위를 되돌아봅니다. 그러고는 자신이 가족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바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멀리 이사를 떠난 그는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어린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오로지 독서에 몰두합니다. 그는 감동을 받았던 문구와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어서 이 책을 쓰기(?) 시작합니다.

  책의 제목인 “자살을 할까, 커피나 한 잔 할까?”는 『이방인』, 『페스트』 등으로 잘 알려진 소설가 알베르 카뮈의 말입니다. 이 책은 카뮈처럼 무언가 고민이 될 때, 문득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이 들 때,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 때, 선배나 친구의 조언도 별 위로가 되지 않을 때 아무렇게나 펼쳐 보기 좋습니다. 272명의 명사와 엘리엇 부의 특이한 생각은 조언이자 위로이자 충고로써 고민에 뜻밖의 빛을 던져 줍니다. “인생에는 오직 쫓기는 자와 쫓는 자, 분주한 자와 지친 자만이 있을 뿐이다. -스콧 피츠제럴드 // 나는 지친 자. 그래서 회사를 때려 치웠다. -엘리엇 부”, “인생은 연극이다. -플라톤 // 이왕이면 코미디. -엘리엇 부”, “바쁜 삶의 허무함을 경계하라. -소크라테스 // 내 말이! 빨리빨리, 느리게 살라니까. -엘리엇 부” 지금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펼쳐보니 이런 구절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 앞서 얘기한 카뮈의 질문에 엘리엇 부가 덧붙인 글은 이렇습니다. “그 커피숍이 어딘지 좀 알려주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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