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며시 눈을 감으면 / 김나영(시인)
감자탕 먹으러 가는 길 건너편, 조그만 커피 전문점 하나 있지, 멀리서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두어들이던, 아직 문 열고 들어가 본 적 없는, 간판이 짙은 코발트빛이었던가 차양이 있었던가 없었던가 기억나지 않는, 이름도 모르는, 문득 문득 문턱을 넘고 싶은, 슬며시 눈을 감으면 내게로 스며드는, 실내악이 사향고양이 꼬리처럼 낭창거리고 있는,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길 건너편, 손가락이 긴 바리스타가 제조해주는 깊고 부드러운 루왁커피에 마른 혀끝 오래 적시고 싶은, 커피 볶는 향이 다탁 사이로 플레어스커트처럼 일렁이고 있을 것만 같은, 그 어렴풋한 현(玄)의 세계 내게서 멀어지지도 더 가까워지지도 않는, 내 마음의 소슬함이 망명 가서 꽂아놓은, 하얀 깃발 하나 혁명처럼 마르고 닳도록 펄럭이고 있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