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 / 김혜수
자판기 커피를 마신다
종이컵에 새겨진 ‘조금 많이 행복한 오늘 되세요’
라는 문구 때문에 나는 행복해진다
내 커피는 점점 달아진다
너무 단것들은 종종 나를 망쳐왔다
행복도 불행도 습관일 뿐
습관은 프리싸이즈
먹이를 통째로 삼키는 보아뱀처럼
무엇이든 담을 수 있다
장난감 권총으로도 비행기를 납치할 수 있듯
종이컵으로도 행복을 연습할 수 있어야 한다
햇살을 퍼담는 손거울, 비눗방울
미확인 비행물체, 다마스쿠스라는 말
을 발음할 때 일어나는 바람 따위로?
그것은 가능한 일일까?
물증은 없으나 심증은 조금 많은
행복한 오늘?
그랬으면 좋겠다
불행에도 자동 온도조절장치가 있어
비등점을 넘어서지 않을 만큼만
끓다가 잦아들면 좋겠다
……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이다)
커피를 다 마시고
‘조금 많이 행복한 오늘 되세요’가 새겨진
종이컵을 휴지통에 넣는다
휴지통은 행복하다
; 내가 죽는 상상을 해본다. 나는 자리에 누워 마지막 숨을 고르고 있다. 파노라마처럼 나의 한생이 눈앞을 스쳐간다. 울고 웃으며 내 삶을 다 돌아보았을 즈음 곁을 지키던 누군가가 묻는다.
"행복한 인생이었나요?"
김혜수 시인의 시 「연습」은 행복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단것을 먹고 잠시 좋아진 기분을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시인은 “너무 단것들은 종종 나를 망쳐왔다”라고 하는데 행복에도 과유불급이라는 금언을 들이댈 수 있을까? 행복을 습관으로 만들 수 있을까? 행복한 습관 혹은 습관적 행복이란 가능한가? 행복은 주어지는 것일까 노력으로도 성취할 수 있는 걸까? 무엇보다 행복을 연습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들에 내 나름의 답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밝히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을 듯하다.
행복은 저마다의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햇살을 퍼담는 손거울, 비눗방울 / 미확인 비행물체, 다마스쿠스라는 말” 따위가 행복을 주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그것들은 시시한 일에 불과하다.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고가의 장난감을 구입하는 마니아를 두고 누군가는 혀를 찬다. 누군가는 봉사가 주는 행복을 전연 이해하지 못한 채 생을 마친다. 이 각양각색의 행복 앞에서 나는 말을 아끼게 된다.
다만 한 가지 ‘나는 언제 행복한가?’를 스스로 묻는 일은 너 나 없이 중요할 듯싶다. 내가 언제 행복을 느끼는지를 알아야만 그 순간을 최대한 살아내는 쪽으로 삶을 끌고 갈 수 있을 터이다. 시인이 생각 끝에 “… / 아무래도 이건 / 아니다”라고 읊조리며 종이컵을 버린 것도 그래서이지 않을까. 시인은 ‘조금’과 ‘많이’를 잇달아 붙여 쓴 저 이상한 문장 앞에서 자기만의 행복을 돌아보았다. 그 깨달음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가 그것을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행복 연습’이 아니라 ‘행복에 대해 생각하는 연습’이니까.
나는 다시 내가 죽는 상상 속으로 돌아가 본다. 아직 나는 행복한 인생이었느냐는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의 행복에 대해 나에게 묻는 동안은 계속 그럴 것이다. 행복에 대한 생각을 멈추는 순간 행복도 나에게 오는 발걸음을 멈출 것이라고 믿는다.
글쓴이, 이현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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