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아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곳에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해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곳에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을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 어느 카페일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당신을 놓치지 않을 자리일 것이다. 문이 열릴 때마다 들썩였던 엉덩이는 언제부턴가 허공중에 엉거주춤히 굳어버렸을 것이다. 탁자 위의 커피는 식은 지 오래지만, 기다림은 더욱더 뜨거워지고 있을 것이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조차 당신의 인기척으로 들릴 만큼,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당신으로 보일 만큼 기다림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마침내 나는 기다림 자체가 되어 당신에게 가고 있을 것이다. 당신과 나는 꼭 만나야 하기에 꼭 만날 것이기에, 기다림은 기다림이 아니라 만남의 예비이자 연장일 것이다. 황지우 시인의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은 이렇게 새로운 기다림의 자세를 보여준다. 수동적인 기다림이 아니라, 찾아가는 기다림. 이것을 적극적인 기다림, 능동적인 기다림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펄시스터즈 1968
「너를 기다리는 동안」을 볼 적마다 펄 시스터즈의 노래 〈커피 한 잔〉(1968)이 떠오르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불덩이 같은 이 가슴 / 엽차 한 잔을 시켜 봐도 / 보고 싶은 그대 얼굴 / 내 속을 태우는구려”, “아 그대여 왜 안 오시나 / 아 내 사랑아 오 기다려요 / 오 기다려요 오 기다려요”라는 가사를 들으면 연인을 기다리는 이 여성의 적극성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내 속을 태우는구려”라는 훅(Hook)으로 잘 알려진 이 곡은 최근까지 워낙 많은 음악인들에 의해 리메이크되었다. 50년 전 노래가 지금까지 사랑받는 건 이 노래가 말하는 기다림에 시대를 뛰어넘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8분이 지나고 9분이 오네 / 1분만 지나면 나는 가요”라고 말하면서도 하릴없이 커피 한 잔 엽차 한 잔을 더 시키는 기다림이야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으리라. 사랑하는 이 또는 정말 바라 마지않는 것을 학수고대하는 이 기쁜 기다림.
우리에겐 저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의 ‘너’와 〈커피 한 잔〉의 ‘그대’가 있을 것이다. 엄혹한 시대에 저 너와 그대는 민주화의 열망이었을 것이고, 지금의 누군가에는 취업이거나 따뜻한 밥 한 끼일지 모른다. 건강일 수도 사랑일 수도 있겠다. 그게 무엇이든 자신만의 ‘너’와 ‘그대’를 만나기 위한 노력, 그 적극적인 기다림이 두루 결실을 맺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란다.
글쓴이 : 이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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