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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에 쓰다

커피돼지 혹은 카페멘쉬(kaffee-mensch) 이력서(3) _ 이현승 시인 _ 모카포트와 더치 드립

내가 처음 원두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은 우연히 구매하게 된 모카포트때문이다. (모카포트란 끓는 물의 증기를 이용해서 에스프레소 커피를 받아내는 일종의 미니 주전자다.) 비알레띠(Bialetti)라는 이탈리아의 이 대중품은 오늘날까지도 거의 모카포트계의 포드 자동차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 갈린 원두를 사다가 직접 집에서 내려 마신 모카포트의 에스프레소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역시 이 생활만 2년 정도. 그동안에는 일리(illy)커피나 라바짜(Lavazza)커피를 사서 먹기도 했다. 우연하게도 그땐 이탈리아에 여행을 가게 되어 정말 라바짜커피와 현지의 모카포트를 사오기도 했다.







그러다가 지금처럼 로스팅까지 하게 된 것은 말 그대로 드립커피를 만나면서부터다. 당시 나와 함께 커피에 미친 사람이 있었는데 평론하고 시 쓰고 하는 김종훈이 그 주인공이다. 취미라는 게 사람을 미치게 하는 힘이 있어서 그땐 커피 이야기만 나오면 무슨 연애를 하듯 했는데, 모카포트는 내가 수출하고, 드립커피는 내가 수입했다. 김종훈을 통해서 드립커피를 마시고 난 후 한 10년간은 변함없이 드립커피를 마신 것 같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사는 일이 어수선하여 드립과 더치를 함께 마시는 편인데, 더치커피는 저장성이 좋아서 편리하다. 이 기계는 절친이 커피집을 하다가 접으면서 인도하여 준 것이다. 그 사이에 전기로스터도 두어 번 바꾸게 되었다.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믹스커피를 처음 마셔본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우리 집에 세 들어 살던 아저씨가 맛보여줬다. 믹스커피야 달달하고 구수한 것이 시골 어른들부터도 좋아하는 기호품이다. 나는 잠을 아주 깊이 자는 체질이어서 잠과 싸우기 위해서도 커피를 좋아하게 되었다. 써야 할 원고가 있고, 어떤 식으로든 원고를 쓰기 위한 절대시간을 벌기 위한 투쟁이 불가피하고, 그런 한은 커피를 마시게 될 것이다. 나의 이는 점점 더 커피색에 다가가고, 지금은 워낙 각성 효과가 줄어들어서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2~3일간 커피를 아예 마시지 않는다. (계속 커피를 늘려가기보다는 2~3일을 쉬는 것이 각성력을 돌이키는 데 도움이 된다. 4일째에 마시는 커피는 한 잔만으로도 엄청난 각성력이 생긴다.)









발자크는 하루에 커피를 48잔까지 마셨다고 하니…… 나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나는 발자크의 중독 상태보다 발자크의 심장이 그 정도로 튼튼했구나 하고 생각된다. 좋은 커피를 즐기기 위해서도 적당한 신체 능력을 유지해야 함은 물론이다. 기회가 된다면 맛있는 담배(시거) 한 모금을 피우기 위해 고기부터 고르는 분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좋아한다는 것은 이만큼 힘이 세다. 다른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










이현승 / 1996년 《전남일보》, 2002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아이스크림과 늑대』 『친애하는 사물들』 『생활이라는 생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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