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커피에 쓰다

카페 소스페소(caffe sospeso) - 맡겨둔 커피

‘카페 소스페소(caffe sospeso)’를 아시나요? 


이 말은 “주문해 놓고 마시지 않은 커피”, “맡겨 둔 커피”를 뜻하는 이탈리아어입니다. 왜 주문한 커피를 마시지 않고 도로 맡겨 두는 걸까요? 여기에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낯모르는 타인에게 커피 한 잔으로 온정을 전하는 일, 그것이 바로 카페 소스페소입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카페 소스페소에 동참하는 커피숍에서 미리 커피값을 계산한 다음 영수증을 비치된 통에 넣어두거나 창문같이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여 놓습니다. 그러면 누구나 그 영수증으로 커피를 주문해 마실 수 있습니다. 주로 경제적 여유가 없는 가난한 노인, 노숙자, 집시 등이 이렇게 커피를 마십니다. 






이 작은 나눔의 역사는 제2차 세계대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전쟁의 공포에 떨었던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지방의 사람들은 서로를 위로하기 위해 카페 소스페소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맥이 끊겼다가 근래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이탈리아에서 다시 각광받은 카페 소스페소는 점차 세계 각지로 퍼져나가 지금은 ‘서스펜디드 커피(Suspended Coffee)’로 불리며 전 세계적인 기부 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커피를 무료로 마시고 싶은 사람은 카페에 “서스펜디드 커피 있나요?”라고 물어보기만 하면 됩니다. 최근 서스펜디드 커피 운동은 커피뿐만 아니라 다른 음식, 나아가 책 나눔으로까지 확산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5년 전 ‘미리내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서스펜디드 커피 운동이 정착하려면 무엇보다 사람 간의 신뢰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리 커피값을 계산하는 사람은 커피숍을 믿을 수 있어야 하고, 커피숍 입장에서는 서스펜디드 커피를 악용하는 얌체족이 우려될 겁니다. 실지로 우리 사회의 빈약한 양심은 이미 몇몇 차례 확인된 바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여러 지자체에서 실시했던 무료 우산 대여 서비스는 우산 회수율이 턱없이 낮아 대부분 중단되었습니다. 지하철 역사에 마련된 도서 대여 코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책을 마구 가져가는 통에 상태가 좋지 않은 도서만이 널브러져 있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따듯한 커피 한 잔, 밥 한 끼. 누군가를 위하는 방법은 꼭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공공재에 대한 인식 개선과 시민의식의 성숙, 공유와 상생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씁쓸합니다.






글쓴이 : 이현호시인






Groasti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