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커피에 쓰다

아침 일곱 시 반 / 구재기(시인)

커피를 마시며 곧 헤어질

오늘 하루의 아내와 만난다

하나 된 인연으로

얼굴을 익히며 몸과 마음으로

천년을 움직이고도 남을

쓰디쓴 기쁨의 이별을 준비한다

아내는 아내대로

나는 나대로 갈 길을 가야 할 시간

자신 있게 떠나보내고 나면

의심하는 것보다 서로를

믿는 것이 그렇게도 쉬운 일이로구나

잠들기 전

혹은 잠에서 깨어나서야

뜬눈으로 마주하는 데는 겨우 서너 시간

하루 이십사 시간의 삼, 사를 위하여

눈물 없이 맞아야 할 아침 일곱 시 반

출근 전

아내와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며

신앙 같은 이별의 만남을 다짐한다




§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는 출중한 장군 ‘오셀로’가 ‘이아고’의 모략에 빠져 파멸하는 이야기다. 이아고의 거짓말에 속은 오셀로는 아내 ‘데스데모나’와 부하 ‘카시오’가 부절적한 관계를 가졌다고 믿는다. 오셀로는 질투와 의심에 사로잡혀 아내를 목 졸라 죽이고 마는데, 이후 진실이 드러나자 자책 끝에 목에 칼을 꽂으며 자결한다. 고상한 인품과 뛰어난 능력으로 모두의 신망을 받던 오셀로가 현숙한 아내와 심복을 믿지 못하고 추락하는 모습은 의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흔히 의처증(의부증)이라고 하는 부정망상(不貞妄想), 즉 배우자의 부정에 대한 망상을 ‘오셀로 증후군’이라고 한다. 이 말의 유래가 「오셀로」다. 부정망상을 불러일으키는 질투를 영문 숙어로 ‘green-eyed monster’라고 하는데 이 역시 「오셀로」의 다음 대사에서 비롯했다. “오, 각하, 질투를 조심하십시오! 질투는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고, 그것을 먹이로 삼는 녹색 눈을 한 괴물이니까요(O, beware, my lord, of jealousy! / It is the green-eyed monster which doth mock / The meat it feeds on).”


위대한 인물마저 망상에 빠뜨려 타락시키는 의심. 「아침 일곱 시 반」의 화자는 의심하는 것보다는 서로를 믿는 것이 쉬운 일이라고 말한다. 의심이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피폐하게 하는지 아는 까닭일 테다. 불신의 가장 큰 피해자는 자기 자신이다. 불신은 마음속을 지옥도로 만들며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의심하기는 쉬워도 믿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지만, 무슨 일이든 믿음 없이 해 나기란 어렵다. 이 시는 하루 서너 시간밖에 얼굴을 보지 못하는 바쁜 맞벌이 부부를 통해 믿음의 가치를 되짚는다. 믿음이 있기에 “나는 나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자신 있게 일상을 영위할 수 있다. “하나 된 인연”에 대한 강력한 신뢰는 “천년을 움직이고도 남을” 만해서 화자에게 이별은 마냥 “쓰디쓴” 게 아니다. 서로에게 믿음이 있는 사람들의 이별은 언제고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기에 “기쁨의 이별”이기도 하다. “신앙”으로 승화된 상대에 대한 믿음은 “이별의 만남을 다짐”하며 커피를 마시는 행위를 일종의 제의로 만든다. 「아침 일곱 시 반」에서 부부가 함께 마시는 모닝커피는 신성하다. “쓰디쓴 기쁨”이 그 커피의 맛이다.



글쓴이 : 이현호시인




주문하면 시작하는 로스팅

Groasti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