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에 쓰다 (45) 썸네일형 리스트형 커피의 고독을 즐긴 시인 김현승 차는 이와 같이 겨울이라면 창밖에 외롭게 앉은 까마귀라도 바라보며 호올로 마시는 게 좋다. 술은 인생을 잠재우며 마시는 데서 그 맛이 나는지 모르지만, 차는 인생을 깨우며 인생을 곰곰이 생각하며 마시게 된다. 사람들은 호올로 있을 때에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고 또 자신을 확대한 인생을 생각하여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커피를 끓이면서」 中 김현승 시인은 「가을의 기도」「플라타너스」「기도」 등의 시편뿐 아니라 커피 마니아로도 유명하다. 오죽이나 커피를 좋아했는지 스스로 호를 ‘다형(茶兄)’이라고 지었다. 이때의 ‘차[茶]’가 다름 아닌 커피다. 그는 매일 아침 집 가까이 있는 다방에 가서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집에서 직접 커피를 내리기도 했는데 그럴 땐 커피를 사발로 마셨다고 .. 담배펴요? 커피마실 때만요. 짐자무쉬 영화 '커피와 담배' 짐 자무쉬의 영화 《커피와 담배》의 주인공은 제목 그대로 커피와 담배다. 열한 개의 흑백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영화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화면을 지키는 것은 이 둘뿐이다. 각각의 이야기마다 커피숍, 카페테라스, 호텔 라운지 등으로 공간이 바뀌어도 커피와 담배만큼은 화면 중앙을 터줏대감처럼 차지하며 영화 전체에 응집성을 부여한다. 매번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들은 커피와 담배를 중심으로 모였다가 곧 화면 밖으로 흩어진다. 커피와 담배는 로베르토 베니니, 케이트 블란쳇, 빌 머레이, 스티브 부세미, 스티브 쿠건 등 극 중 실명으로 출연하는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연기력(?)을 보여준다. 단편에 따라 인물, 사건, 배경은 제각각이지만 이들이 만드는 서사 구조는 대동소이하다.. 안웅선 _ 커피, 꽃 그리고 꿀(2) 커피, 꽃 그리고 꿀 2 / 안웅선 그것이 왔다. 운남성의 남쪽 지방에서 쿤밍까지는 기차로 쿤밍에서 서울까지는 하늘을 날아서. 평범한 병에 담겨 있었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평범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순백과 크림색 사이의 빛깔을 띤 고체가 병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 코코넛 오일이 아닐까 생각되는 질감이었다. 향은 진하다기보다 은은해서 누군가 산뜻한 아로마 오일을 따듯한 물에 한두 방울 떨어뜨려 방 안에 둔 것이 아닌가라는 착각을 하게끔 했다. 음용법에 대한 설명은 간단했다. 물에 타서 마시려거든 너무 뜨겁지 않은 물에 타서 마실 것. 아기의 체온 정도의 물이 적당하다. 빵에 발라 먹어도 좋고 비스킷 같은 것에 얹어 먹어도 좋다. 설명은 거기까지였다. 올해 채취한 마지막 남은 꿀을 어렵게 구.. 이병률 _ 검은물 (커피) 검은 물 / 이병률 칼갈이 부부가 나타났다 남자가 한번, 여자가 한번 칼 갈라고 외치는 소리는 두어 번쯤 간절히 기다렸던 소리 칼갈이 부부를 불러 애써 갈 일도 없는 칼 하나를 내미는데 사내가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이 들어서기엔 좁은 욕실 바닥에 나란히 앉아 칼을 갈다 멈추는 남편 손께로 물을 끼얹어주며 행여 손이라도 베일세라 시선을 떼지 않는 여인 서걱서걱 칼 가는 소리가 커피를 끓인다 칼을 갈고 나오는 부부에게 망설이던 커피를 권하자 아내가 하는 소리 이 사람은 검은 물이라고 안 먹어요 그 소리에 커피를 물리고 꿀물을 내놓으니 이 사람 검은색밖에 몰라 그런다며, 태어나 한번도 다른 색깔을 본 적 없어 지긋지긋해한다며 남편 손에 꿀물을 쥐여준다 한번도 검다고 생각한 적 없는 그.. 박성우 _ 버릇 버릇 / 박성우 눈깔사탕 빨아먹다 흘릴 때면 주위부터 두리번거렸습니다 물론, 지켜보는 사람 없으면 혀끝으로 대충 닦아 입속에 다시 넣었구요 그 촌뜨기인 제가 출세하여 호텔 커피숍에서 첨으로 선을 봤더랬습니다 제목도 야릇한 첼로 음악을 신청할 줄 아는 우아한 숙녀와 말이에요 그런데 제가 그만 손등에 커피를 흘리고 말았습니다 손이 무지하게 떨렸거든요 그녀가 얼른 내민 냅킨이 코앞까지 왔지만서도 그보다 빠른 것은 제 혓바닥이었습니다 ;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더니 이 시의 정황이 딱 그렇습니다. 먹다 흘린 사탕을 대충 닦아 다시 입에 넣던 어릴 적 버릇 탓에 민망한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손이 무지하게” 떨릴 만큼 그 숙녀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인데, 그녀 앞에서 본의 아니게 벌어진 이 촌극을 어찌.. 정호승 _ 바닥에 쏟은 커피를 바라보며 바닥에 쏟은 커피를 바라보며 / 정호승바닥에 쏟은 커피는 바닥이 잔이다 바닥에 커피를 쏟으면 커피는 순간 검은 구름이 된다 바다가 비에 젖지 않고 비를 바다로 만들듯 바닥도 커피에 젖지 않고 커피를 바닥으로 만든다 바닥을 걷는 흉측한 발들아 물 위를 걸은 예수의 흉내를 내다가 익사한 발들아 검은 구름떼가 흘러가는 바닥의 잔을 들어라 오늘도 바닥의 잔을 높이 들고 남은 인생의 첫날인 오늘보다 남은 인생의 마지막 날인 내일을 생각하며 봄비 내리는 창가를 서성거려라 ; “한번 엎지른 물은 다시 주워 담지 못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일단 벌어진 일은 되돌리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누구나 그 속에서 크고 작은 실수를 저지릅니다. 어떤 실수는 후회로 잠을 이룰 수 없게 하지만, 누구도.. 안웅선 _ 커피, 꽃 그리고 꿀 커피, 꽃 그리고 꿀 / 안웅선 당연한 이야기지만 커피에도 꽃이 핀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커피나무에도 꽃이 핀다. 작고 하얀 꽃이. 손톱만 한 하얀 겹꽃들이 가지에 다닥다닥 붙어서 핀다. 건기의 마지막에 꽃은 피었다가 우기가 오면 꽃이 지고, 작은 녹색의 방울들이 그 자리에 생겨난다. 점점 커지다가 빨갛게 변한다. 커피나무에서 일어나는 일들. 꽃은 버려지고, 열매 역시 버려진다. 커피 열매에서는 꽤나 단맛이 난다. 커피꽃에서도 꽤나 단맛이 난다. 운남성에서 여행 가이드로 일하는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국에 잠깐 들어가는데 필요한 것이 없냐고 물었다. 마시던 차가 얼마 남지 않았었기에 차를 몇 편 부탁했다. 순하게 로스팅한 운남의 커피 역시 그리워지고 있던 참이어서 원두를 조금 부탁했다. 커피 이야.. 고영민_원두 원두 / 고영민원두를 넣고 물을 부어 커피를 내린다 기다려 커피 한 잔을 받아와 창가에 앉았다 꽃나무들이 물을 부어 꽃을 내린다 한 철 허공에 필터를 받쳐놓고 꽃차를 우려낸다 몇 차례 뜨거운 비가 꽃가지 사이를 왔다 갔나 올봄 당신은 저 나무에게서 몇 잔의 뜨겁고 진한 꽃차를 얻어 마셨나 어제는 먼지 이는 꽃나무 밑으로 외국인 노동자 몇 명이 흰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지나갔다 걸으면서 자꾸 자꾸 자꾸 입맞춤을 하던 달콤한 연인이 지나갔다 유치원생들이 줄지어 지나갔다 전동휠체어를 탄 뇌성마비 여자가 얼굴을 묘하게 일그러뜨리며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중년의 여자가 큰 개를 끌며, 끌려가며 지나갔다 ; 시의 화자는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립니다. 여과지를 올린 드립퍼에 간 원두를 넣고 그 위에 뜨거운 물을 천천히 .. 장석남 _ 숟가락 ; “혼자 있는 집을, 왜 나는 빈집이라고 부릅니까.” 「빈집」이라는 제 시의 한 구절입니다.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합니다. 우리는 혼자 있는 집을 곧잘 빈집이라고 합니다. ‘나’라는 사람이 집 안에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것은 아마 함께하고 싶은 사람의 빈자리가 집 안이 텅 비게 느껴질 만큼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 아이의 아버지일 이 시의 화자도 그렇습니다. 화자는 아이가 없는 “빈집에 혼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습니다. 보고 싶다는 말은 없지만, 시의 마지막 두 행에서 아이를 그리워하고 또 아끼는 마음이 오롯이 전해집니다. “단가 쓴가 / 가슴이 뻐근하다”라는 구절에서는 아버지로서의 보람과 회한도 느껴집니다. 아이의 작은 밥숟가락으로 커피를 젓고, 마치 아이처럼 그 숟가락으로 홀짝홀짝 커피를 떠먹는.. 엘리엇 부 _ 자살을 할까, 커피나 한 잔 할까? ; 엘리엇 부의 『자살을 할까, 커피나 한 잔 할까?』는 독특한 책입니다. 베개로 쓰기에도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500쪽 남짓한 두께, 나란히 붙어 있는 낡은 장정의 책들로 디자인한 표지. 어렵고 재미없는 얘기가 빼곡히 적혀 있을 것 같은 첫인상이지만, 겉모습이 주는 위압감을 떨치고 책을 펼쳐 보면 의외로 부실한(?) 내용이 눈길을 잡습니다. 이 반전 매력 앞에 혹자는 무슨 책이 이러냐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의 왼쪽 페이지에는 대부분 큼지막한 인물 사진이, 오른쪽에는 대여섯 줄의 글이 적혀 있습니다. 그 글이란 게 이런 식입니다. “삶의 속도에만 정신을 팔다가 삶의 알맹이를 놓치는 어리석음. ―간디 // 이 양반이 와이파이를 몰라서 그렇지! ―엘리엇 부” 왼쪽 페이지에 있는 건 당연히 간디의 사진입니.. 오규원_프란츠 카프카 : 오규원 시인의 시집『가끔은 주목받는 生이고 싶다』에 실려있는「프란츠 카프카」입니다. 메뉴판을 패러디한 파격적인 작품이지만, 시적 정황은 명확합니다. 시인은 한 까페에서 메뉴판을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메뉴란 것들이 까페 치고는 이상합니다. 메뉴판에는 커피 종류 대신 저명한 문학가와 철학가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시집『악의 꽃』으로 유명한 프랑스 시인 '샤를르 보들레르'가 800원이고, 독일의 철학가 '위르겐 하버마스'는 1200원입니다.『가끔은 주목받는 生이고 싶다』가 출간된 1987년의 물가를 염두에 두더라도, 그들의 이름값에 비하면 턱없는 가격입니다. 물론 사람에게 값을 매기는 것 자체가 불편하기도 합니다. 시인은 왜 메뉴판에 커피 이름 대신 내로라하는 문학가와 철학가의 이름을 적었을..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