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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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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돼지가 수놓는 인간의 하늘 (2) 4. 모양새는 돼지지만 포르코의 행동은 누구보다 인간답다. 영화 초반 포르코는 그의 은거지인 무인도 해변에서 영화 잡지로 얼굴을 가린 채 음악을 들으며 낮잠을 자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포르코의 이러한 여유로움은 뒤이어 등장하는 공적들의 궁상맞은 몰골과 대조를 이룬다. 공적들은 광산 회사의 월급이 실린 배를 약탈하고, 포르코는 이들을 물리쳐 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그는 싼 일은 하지 않는다며 거절하지만 그 배에 어린 여학생들이 타고 있다는 말을 듣자 곧바로 일어나 비행정에 시동을 건다. “그건 좀 비싸게 먹히겠군!”이라는 말이 괜한 위악이었다는 것은 이후 구출한 아이들에게 쩔쩔 매는 그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사람들은 흔히 돼지라고 하면 아둔하고 지저분하며 욕심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
한 마리 돼지가 수놓는 인간의 하늘 (1) 1.유튜브 링크는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1992)의 사운드트랙인 〈때로는 옛이야기를〉이다.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흘러나오는 이 곡은 작중 ‘지나’의 목소리를 연기한 가수 ‘가토 도키코’가 불렀다. 영화음악으로 유명한 ‘히사이시 조’의 통속적인 멜로디에 읊조리듯 노래하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어느덧 엔딩 크레디트를 끝까지 보게 된다. 영화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는 듯한 가사도 인상적이다. “가끔은 옛날이야기를 해볼까/ 익숙한 단골가게/ 마로니에 가로수가 창가에 보였던/ 커피 한 잔의 하루/ 보이지 않는 내일을 무작정 찾으며/ 누구나 희망을 걸었었지/ 흔들리는 시대의 뜨거운 바람을 맞으며/ 온몸으로 순간을 느꼈었지/ 그랬었지”. 노래가사의 화자는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들끓는 마..
예술가와 카페 (3) _ 학림다방 클래식 선율을 따라 낡은 나무 계단을 올라간다. 문을 열면 계산대 뒤로 빽빽이 들어찬 레코드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주방 찬장에는 갖은 찻잔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한쪽 벽을 반분한 계산대와 주방 사이 기둥에 장식된 베토벤의 두상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손님을 굽어본다.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간직한 허름한 나무 탁자와 빛바랜 소파. 이층 난간에 선거 포스터처럼 붙어 있는 음악인의 흑백사진. 빈자리를 찾아 앉으면 삼사십 년 전의 어느 날 속에 와 있는 기분이 든다. 2013년 서울특별시가 미래유산에 등재한 학림다방(學林茶房). 1956년 당시 동숭동에 있던 서울대학교 문리대 건너편에 문을 연 이곳은 벌써 60년 넘게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달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예술가와 카페 (2) _ 다방 마돈나와 모나리자 이상이 경영했던 다방은 모두 오래 가지 못했지만, 맥(麥, 일본말로 ‘무기’) 다방은 ‘명동 다방 시대’의 효시가 되었다는 의의가 있다. 맥 다방이 요즘의 명동 자리에 문을 열면서 주변에 다른 다방들이 들어선 것이다. 이후 해방을 거치며 명동에는 본격적인 다방의 시대가 펼쳐진다. 그중에서도 예술인 특히 문인은 명동 거리의 터줏대감이었다. 전화기가 귀하던 시절이라 문인들은 명동의 다방을 아지트 삼아 문학 얘기를 나누며, 원고 청탁도 주고받았다. 그 시절 다방 중에서 ‘마돈나’는 문인이 많이 찾은 것으로 유명하다. 조병화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당시 예술인들은 “삼국지의 영웅들처럼 해방된 서울 명동을 웅거했다.” 1947년 세 여성이 힘을 모아 개업한 마돈나에는 김동리, 조연현, 김송, 이용악, 정지용, 김..
예술가와 카페 (1) _ 제비다방 서울시 종로구 통인동에는 ‘이상의집’이 있다. 작가 이상(본명 김해경, 1910~37)의 자료를 전시하는 이곳은 그가 세 살 때 양자로 들어가 자란 큰아버지의 집 ‘일부’다. 실제 이상이 살았던 집은 넓은 뜰에 안채와 사랑채까지 딸려 있었는데, 1933년 큰아버지 사후 매각된 뒤 분할된 필지에 도시형 한옥을 다시 지은 것이 현재 ‘이상의집’이다. 원형이 많이 훼손된 것은 아쉽지만 어쨌든 이상은 ‘이 땅’에서 스물세 살까지 살며 첫 장편 「십이월십이일」(1930)과 첫 시 「이상한 가역반응」(1931) 그리고 문제작 「오감도」(1931)를 발표했다. 이상이 스물일곱에 요절했으니 그는 생의 대부분을 여기서 살았던 셈이다. ‘이상의집’은 2012년 말에서 2013년 4월 17일(이상의 기일)까지 ‘제비다방’으..
카페 소스페소(caffe sospeso) - 맡겨둔 커피 ‘카페 소스페소(caffe sospeso)’를 아시나요? 이 말은 “주문해 놓고 마시지 않은 커피”, “맡겨 둔 커피”를 뜻하는 이탈리아어입니다. 왜 주문한 커피를 마시지 않고 도로 맡겨 두는 걸까요? 여기에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낯모르는 타인에게 커피 한 잔으로 온정을 전하는 일, 그것이 바로 카페 소스페소입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카페 소스페소에 동참하는 커피숍에서 미리 커피값을 계산한 다음 영수증을 비치된 통에 넣어두거나 창문같이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여 놓습니다. 그러면 누구나 그 영수증으로 커피를 주문해 마실 수 있습니다. 주로 경제적 여유가 없는 가난한 노인, 노숙자, 집시 등이 이렇게 커피를 마십니다. 이 작은 나눔의 역사는 제2차 세계대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카페 쓰어다와 무가당 연유 / 안웅선 시인 커피는 쉽게 좋아하기 힘든 기호품이다. 특히 맨 처음 접한 커피가 오래되어 산화된 원두를 사용했거나 내리는 방법이 잘못되어 특유의 향과 풍미를 잃어버린 것이었다면 더욱 그렇다. 그냥 쓴맛이 나는 물이 되어버린 커피는 아무래도 좋아하기 힘들다. 베트남 커피를 처음으로 맛보았을 때가 그랬다. 언제 볶았는지도 모를 원두를 갈아 알루미늄 드리퍼에 넣어 내린 커피는 좋아하기가 힘들었다. 친구에게 여행 선물로 받은 것인데, 그래도 베트남의 특산물이라는 생각으로 억지로 한 봉지를 비우고 나서 선물로 받은 원두와 드리퍼는 선반 한구석으로 밀려났다. 그러다가 진짜 베트남 커피를 만났을 때, 무더운 호치민 시의 토요일 오후 노틀담 성당 옆의 카페에 앉아 카페 쓰어다를 시켜 맛보았을 때 베트남 커피에 대한 편견은 모두 사라..
커피돼지 혹은 카페멘쉬(kaffee-mensch) 이력서(3) _ 이현승 시인 _ 모카포트와 더치 드립 내가 처음 원두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은 우연히 구매하게 된 모카포트때문이다. (모카포트란 끓는 물의 증기를 이용해서 에스프레소 커피를 받아내는 일종의 미니 주전자다.) 비알레띠(Bialetti)라는 이탈리아의 이 대중품은 오늘날까지도 거의 모카포트계의 포드 자동차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 갈린 원두를 사다가 직접 집에서 내려 마신 모카포트의 에스프레소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역시 이 생활만 2년 정도. 그동안에는 일리(illy)커피나 라바짜(Lavazza)커피를 사서 먹기도 했다. 우연하게도 그땐 이탈리아에 여행을 가게 되어 정말 라바짜커피와 현지의 모카포트를 사오기도 했다. 그러다가 지금처럼 로스팅까지 하게 된 것은 말 그대로 드립커피를 만나면서부터다. 당시 나와 함께 커피에 미친 사람이 ..
커피돼지 혹은 카페멘쉬(kaffee-mensch) 이력서(2) _ 이현승 시인 _ 자가 로스터 취향도 다소 까다로운 편인데다가 마시는 양은 많고, 이러다보니 자가 로스터의 길을 걷게 되었다. 처음에는 수제 수망 로스터로 시작했다. 수망 두 개의 끝을 철사로 엮어 뒤집기용 양면 프라이팬 같은 모양으로 만드는 수망로스터는 직화구이라서 비교적 커피도 빨리 볶이고 실패할 확률이 낮은 것이 장점이지만, 이게 욕심껏 한 500g의 생두를 넣고 계속 흔들자면 워낙에 체력이 필요하다. 나는 어깨가 강력한 편이라서 수망 로스팅을 무려 2년을 넘게 했지만, 정작 로스팅의 가장 큰 적은 연기였다. 커피는 일종의 견과라서 열을 가하면 두 번 정도 몸이 부푸는 과정이 오는데, 보통 두 번째 몸이 부풀 때 타타타탁 하는 소리가 나고, 연기가 심하게 발생한다. 더욱이 이 시점이 커피의 맛이 결정되는 시점이라서 매우 중요하다..
커피돼지 혹은 카페멘쉬(Kaffee-mensch) 이력서(1), 이현승 시인 _ 커피돼지 나는 커피를 심할 때는 거의 1리터까지 마신다. 내가 커피를 더 마시지 않는 것은 더 많이 마시면 맛을 못 느끼거나 맛이 없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미식의 세계는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식가가 미식가일 수 없는 이유는 대식은 맛의 감별보다 우선하는 식욕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무슨 허준이라고, 내 몸을 바탕으로 갖은 레시피를 실험하던 때도 있었으니 정말 커피에 미쳐서 지낼 때는 1.5리터 이상을 마실 때도 있었다. 어쨌거나 커피를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많이도 마시는 데에는 직업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각성제가 필요한 삶, 직업. 나는 나처럼 커피를 좋아하고 많이 마시는 사람을 커피돼지라고 부른다. 내가 보기에 나의 문우들 중에는 커피돼지가 제법 있다. 이현승 시인 한참 커피에 미쳤을 때는 직업을 바꿀까하..
커피와 카페인 (나에게 맞는 하루 카페인) 제게는 커피에 관한 두 가지 내규가 있습니다. 빈속에 그리고 하루 한 잔 이상 마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빈속에 커피를 마실 때마다 속이 쓰렸고, 커피를 두세 잔씩 먹으면 으레 심장이 몹시 두근거리며 자꾸 화장실을 들락거렸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도 아침 일찍 강의가 있어서 아침밥을 거른 채 잠도 깰 겸 커피를 들이켰다가 고생을 했습니다. 강의 내내 속이 불편하고 심장이 쿵쾅거려서 진땀을 뺐습니다. 카페인(Caffeine)은 커피(Coffee)에 알칼로이드 물질(alkaloid, 식물체 속에 들어 있는 염기성 유기화합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중요한 생리 작용과 약리 작용을 나타내는 것이 많은데 니코틴, 모르핀, 카페인 따위가 대표적이다.)을 뜻하는 ‘-ine’가 붙은 말입니다. 처음으로 순도 높은 카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