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종로구 통인동에는 ‘이상의집’이 있다. 작가 이상(본명 김해경, 1910~37)의 자료를 전시하는 이곳은 그가 세 살 때 양자로 들어가 자란 큰아버지의 집 ‘일부’다. 실제 이상이 살았던 집은 넓은 뜰에 안채와 사랑채까지 딸려 있었는데, 1933년 큰아버지 사후 매각된 뒤 분할된 필지에 도시형 한옥을 다시 지은 것이 현재 ‘이상의집’이다.
원형이 많이 훼손된 것은 아쉽지만 어쨌든 이상은 ‘이 땅’에서 스물세 살까지 살며 첫 장편 「십이월십이일」(1930)과 첫 시 「이상한 가역반응」(1931) 그리고 문제작 「오감도」(1931)를 발표했다. 이상이 스물일곱에 요절했으니 그는 생의 대부분을 여기서 살았던 셈이다.
‘이상의집’은 2012년 말에서 2013년 4월 17일(이상의 기일)까지 ‘제비다방’으로 이름을 바꾼 적이 있다. 이상과 기생 금홍이 함께 운영했던 다방 ‘제비’를 재현한 것이다. 1933년 종로1가에 문을 연 제비는 당대 예술가와 지식인의 집합소였다. 커피를 매개로 제비에 모인 이들은 이곳에서 시대와 예술을 토론하고 사색을 즐겼다. 잡지 『삼천리』(1934)에 실린 「끽다점평판기(喫茶店評判記)」는 다방 제비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읽는 분의 편의를 위해 현대어로 옮겨 적는다. 원문은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에서 볼 수 있다.―
“총독부에 건축기사로도 오래 다닌 고등공업 출신의 김해경 씨가 경영하는 것으로 종로에서 서대문 가다보면 10여 집 가서 우편(右便) 페-부멘트 옆에 나일강반(江畔)의 유객선(遊客船)같이 운치 있게 비켜선 집이다. 더구나 전면 벽은 전부 유리로 깐 것이 이색이다.
이렇게 종로대가(鍾路大家)를 옆에 끼고 앉았으니만치 이 집의 독특한 인삼차나 마시면서 바깥을 내어다 보노라면 유리창 너머 페이부멘트 위로 여성들의 구둣발이 지나가는 것이 아름다운 그림을 바라보듯 사람을 황홀케 한다. (…중략…)
이 집에는 화가, 신문기자 그리고 동경(東京) 오사카(大阪)로 유학하고 돌아와서 할 일 없어 양차(洋茶)나 마시며 소일하는 한가한 청년들(有閑靑年)이 많이 다닌다. 봄은 안 와도 언제나 봄 기분 있어야 할 제비. 여러 끽다점 중에 가장 이 땅 정조(情調)를 잘 나타낸 ‘제비’란 이름이 나의 마음을 몹시 끈다.”
1935년 9월 다방 제비는 경영난으로 문을 닫는다. 이상은 이후 ‘쯔루(鶴)’, ‘69’, ‘맥’이라는 이름의 다방을 잇달아 차렸으나 역시 성공하지 못한다. 이중 69 다방은 성 체위를 연상시키는 상호 때문에 여러 말이 전하는데, 사실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대표적인 이야기는 이상이 ‘69’라는 이름으로 종로경찰서의 영업 허가를 받았으나 뒤늦게 상호에 숨은 뜻을 파악한 경찰이 이를 취소했다는 것이다. 이상이 일본인을 속여 먹었다고 낄낄대며 웃더라는 얘기도 전하고, 이 때문에 경찰에게 고초를 겪으면서 폐결핵이 악화되어 죽음을 맞게 되었다고도 한다. 이제껏 언급한 이상과 관련된 공간 중에 조금이나마 그의 자취가 남아 있는 건 ‘이상의집’뿐이다. 다방 제비는 최근 문화평론가 박광민 씨가 이상의 친구였던 화가 구본웅의 그림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당시 있었던 곳의 단서를 찾았지만, 다른 장소들은 실제 위치마저 확실하지 않다.
이상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상의집’을 찾아가 보기를 권한다. 마침 ‘지로스팅’이 ‘이상의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다. 이상이 운영했던 다방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아쉬움을 ‘지로스팅’에서 달래도 좋겠다.
주문하면 시작하는 로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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