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이 경영했던 다방은 모두 오래 가지 못했지만, 맥(麥, 일본말로 ‘무기’) 다방은 ‘명동 다방 시대’의 효시가 되었다는 의의가 있다. 맥 다방이 요즘의 명동 자리에 문을 열면서 주변에 다른 다방들이 들어선 것이다. 이후 해방을 거치며 명동에는 본격적인 다방의 시대가 펼쳐진다.
그중에서도 예술인 특히 문인은 명동 거리의 터줏대감이었다. 전화기가 귀하던 시절이라 문인들은 명동의 다방을 아지트 삼아 문학 얘기를 나누며, 원고 청탁도 주고받았다. 그 시절 다방 중에서 ‘마돈나’는 문인이 많이 찾은 것으로 유명하다. 조병화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당시 예술인들은 “삼국지의 영웅들처럼 해방된 서울 명동을 웅거했다.”
1947년 세 여성이 힘을 모아 개업한 마돈나에는 김동리, 조연현, 김송, 이용악, 정지용, 김영랑 등 문학인이 자주 찾아왔다. 주인장들은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서 시간을 죽이는 그들에게 ‘벽화(壁畫)’라는 별명을 붙였다. 벽화들은 한 잔 커피를 앞에 두고 종일 예술과 시대를 논했다.
다방 주인 손소희와 소설가 김동리의 사랑은 ‘마돈나’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다. 손소희는 이미 기성 작가였지만, 김동리는 그의 작품이 눈에 차지 않았다고 한다. 김동리는 다방에 앉아 손소희에게 소설 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시켰다. 그러면서 정이 든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
한국전쟁 때 북한군이 서울에 진주하면서 반동분자로 몰린 김동리를 손소희가 자기 집 안방 천장 위에 석 달 동안이나 숨겨주었다고 하니, 마돈나 다방의 인연이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한 셈이다.
‘모나리자’는 한국전쟁 막바지에 제일 먼저 피란에서 돌아와 다시 명동에 문을 연 다방이다. 배우이자 가수였던 강석연이 운영한 까닭에 문인과 더불어 당대의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많이 출입했다. 시인 박인환과 조지훈, 소설가 박계주, 가수 왕수복, 선우일선, 김복희 등이 단골이었다고 한다.
늦은 저녁이면 술 취한 예술가들이 북적이는 통에 모나리자에는 사건이 끊이지 않았는데, 박인환과 관련해서는 이런 일화가 전한다. 어느 날 박인환이 모나리자에 외상값으로 맡겼던 만년필을 찾아다가 “그처럼 경박하고 그처럼 값싼 유행의 숭배자가 없다.”라며 자신을 대놓고 경멸했던 친구 김수영(시인)에게 건넸다는 것이다. 이상을 유독 좋아했던 박인환이 그의 기일을 맞아 폭음을 하고 급사하기 며칠 전이었다.
* 이 글은 김태완의 「100년 전 모던 뉘우스」, 강준만의 『한국 현대사 산책』, 이호철의 「문단골 60년 이야기」를 참고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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