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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에 쓰다

예술가와 카페 (3) _ 학림다방

     클래식 선율을 따라 낡은 나무 계단을 올라간다. 문을 열면 계산대 뒤로 빽빽이 들어찬 레코드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주방 찬장에는 갖은 찻잔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한쪽 벽을 반분한 계산대와 주방 사이 기둥에 장식된 베토벤의 두상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손님을 굽어본다.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간직한 허름한 나무 탁자와 빛바랜 소파. 이층 난간에 선거 포스터처럼 붙어 있는 음악인의 흑백사진. 빈자리를 찾아 앉으면 삼사십 년 전의 어느 날 속에 와 있는 기분이 든다. 2013년 서울특별시가 미래유산에 등재한 학림다방(學林茶房). 1956년 당시 동숭동에 있던 서울대학교 문리대 건너편에 문을 연 이곳은 벌써 60년 넘게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달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젊다. 학림다방의 트레이드마크인 비엔나커피를 앞에 두고 대화에 여념이 없는 청춘 남녀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응답하라 1988〉 등의 배경이 된 뒤로 학림다방은 데이트 장소로 또 한류 관광지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오후에는 줄을 서서 대기해야 할 정도다. 학림다방의 4대 사장인 이충렬 씨는 최근 커피를 볶던 곳을 개조해 ‘학림커피’라는 분점을 냈다. 자리가 없어 발길을 돌리는 단골을 위해서다. 학림다방은 아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학림커피에서 커피를 만들며 단골의 말벗이 되어주고 있다. 학림다방 건물 옆 골목으로 들어가다 보면 왼편으로 파란 철제 대문이 보이는데 거기가 학림커피다.






     요즘은 주 고객층이 바뀌었지만 본디 학림다방은 예술인의 아지트이자 민주화운동에 몸을 던진 대학생의 회합 장소였다. 이청준, 전혜린, 천상병, 김지하, 황석영, 김민기, 김승옥 등 기라성 같은 예술인이 수시로 학림다방을 드나들었다. 송강호, 설경구, 황정민 등도 대학로 연극인 시절 이곳을 찾았다. 반백 년이 넘는 동안 숱한 예술인이 출입했으니 이런저런 이야기가 없을 리 없다. 전혜린이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죽기 전날 친구 이덕희를 만나 생애 마지막 커피를 마신 곳, 가난한 대학생 김승옥이 첫 소설 「생명연습」을 공개한 곳, 김지하가 ‘지하(之夏)’에서 지금의 ‘지하(芝河)’로 필명을 바꾼 곳, 천상병이 지인에게 술값을 얻어내던 곳이 바로 학림다방이다. 민주화운동이 치열하던 때에는 경찰에게 쫓기던 학생들이 학림다방에 몸을 숨기곤 했다. 1980년대 대표적 공안 사건인 ‘학림사건’의 ‘학림’이란 이름도 이곳에서 비롯했다. 경찰은 ‘전국민주학생연맹(전민학련)’이 첫 모임을 학림다방에서 가졌다는 이유로 전민학련 관계자를 불법 감금하여 수사하고 고문한 사건에 이런 명칭을 붙였다.






여러 문인이 학림다방의 추억에 부치는 글을 남겼다.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학림은 안 잊었노라.”(홍세화), 


“學林 시절은 내겐 잃어버린 사랑과 실패한 혁명의 쓰라린 후유증, 그러나 로망스였다.”(김지하),


 “우리 젊음의 영원한 강의실 學林이여.”(정명수). 




학림다방 건물 입구에는 서울미래유산 등재를 기념하는 황동일의 헌시가 붙어 있다. 


“이 초현대, 초거대 메트로폴리탄 서울에서

1970년대 혹은 1960년대로 시간 이동하는

흥미로운 체험을 할 수 있는 데가

몇 군데나 되겠는가?

그것도 한 잔의 커피와

베토벤쯤을 곁들여서….”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글쓴이 : 이현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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